이제 여행과 '친환경'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.
오늘 당신이 마신 커피는 남미 농부의 자부심이었다.
우리나라 사람들이 갖은 채식에 대한 편견 중 하나는, 영양이 부족하거나 결핍된 치우친 식단이라는 것과 건강보다는 윤리적, 환경적 가치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는 엄격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이다. 의미있는 시도있긴 하지만,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기엔 뭔가 좀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일 것이다.
'박정희 모델'의 일사분란함, 획일성을 벗어나 개인들의 각기 다른 개성과 장점들이 발현되고, 사회의 활력을 만드는 창조적 실험들이 이뤄지며,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둘러앉아 이야기하고 힘을 합칠 수 있는 사회가 2016년 한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미래 사회의 상이라는 설명이다. 이 새로운 모델 하에서 개인들이 지향하는 것은 더 이상 성장이나 생존이 아니라 '지속가능한 삶'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. 구체적으로는 적정한 소득을 버는 한편으로 가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균형 있게 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.
"먹을 것은 직접 농사짓고 난방도 로켓스토브 같은 적정기술을 활용해 해결해요. 통신비나 차량 유지비도 최소한으로만 써요. 생활하기 위해 많이 일하지 않아도 되니 스스로 돌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요." 지금처럼 풍요롭게 살게 된 것이 스스로 놀라워 그는 청년들에게 당장 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가라고 말해 주곤 한다.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.
타메라의 경험을 통해 이들에게 생태마을에 산다는 것은 단순히 생태적으로 지어진 집에서 살며 몸에 좋은 유기농 음식을 먹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가슴으로 몸으로 배울 수 있다. 이들에게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모두 던져 자신의 내면, 이웃, 자연 나아가 지구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평화의 공간을 만드는 것임을 느꼈다. 이들의 삶에 깊은 존경심을 보내며 맑고 진실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거창한 관념들이나 사상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, 손, 발 그리고 영혼이 이어진 위대한 일상의 온기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.
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외부로 개방하고자 애쓴 것, 주민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함은 자급자족하는 섬으로서 은거하지 않겠다는 표현이었다. <섬>이란 질문은 공동체를 비롯, 모든 대안운동이 짊어진 화두이다. 자신들만의 섬, 혹은 시간을 되돌리고 진입하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중세 시골마을의 목가적 상황으로 회귀, 폐쇄된 그룹으로 자족하려는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. 그럼에도 공동체가 받아야 했던 <섬 혹은 섬의 은둔자들>이란 공세. 니더카우풍엔 공동체는 "대안적 사고와 대안적 삶 사이에 바다만큼 넓은 간극이 있다면, 그 안의 섬이 니더카우풍엔."이라며 긍정적이고 다소 문학적인 표현으로 <섬> 이란 문제를 정리한다.